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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다
  • 설교일2021-02-21
  • 성경본문마태복음 21:12-13 & 18-22
  • 설교자정영태 목사
설교게시판 내용
설교내용
본문내용
12.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13.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18.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19.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20.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겨 이르되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
21.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22.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는 열 손가락으로 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은혜를 그들은 받았습니다. 특별히 하나님께로 받은 은혜 가운데 가장 귀하고 소중한 은혜는 그들이 율법을 받은 것이고, 하나는 성전을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그들이 율법을 잘 지키기만 하면 그리고 성전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제대로 드리기만 하면 그들의 인생은 항상 풍요롭고, 형통하도록 그렇게 약속이 되어 있는 그런 그들의 삶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불행하기도 그들은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도 못했고,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사도 올바르게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율법의 내용이 너무 어려운 것도 아니고, 제사을 드리는 방법을 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도 아닙니다. 단지 마음이 하나님께로부터 떠났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마음이 없으면, 마음이 떠나면 내용은 변질되기 마련이고, 그리고 형식이 내용을 대신하게 됩니다. 신앙생활이 그렇게 된다는 것이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이고, 얼마나 심각한 일이냐? 그것을 예수님께서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인 것입니다. 먼저 마태복음 21:12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두 가지 일을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우리는 이런 말씀을 대할 때 조금 이해가 되지 않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 하나는 왜? 예수님의 이런 행위를 제제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누가복음 22:52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예수께서 그 잡으러 온 대제사장들과 성전의 경비대장들과 장로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왔느냐

 

그렇게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전의 경비대장들이 있었다면, 성전을 관리하는 경비대원들이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성전은 자체적으로 성전의 치한을 유지하고, 성전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자체 경비대원들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이런 행위는 간단한 행위가 아닙니다. 그냥 성전을 소란케 한 정도가 아니라 기물을 파손하고, 업무를 방해한 어떻게 보면 굉장히 심각한 일을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상식적으로 성전의 질서를 책임을 맡고 있던 경비대원들이 급하게 출동을 해서 예수님의 그런 행위를 제제하거나 예수님을 체포하거나 그랬어야 할 것 같은데 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예수님의 이런 행위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너무나 돌발적인 사건이였기 때문에 종교지도자들 조차도 굉장히 당황했었던 것 같습니다. 감히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와서 그런 일을 누가 할 것이라고 하는 것을 꿈에라도 생각을 했겠습니까! 당연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뒤따라오는 사람들이 다 호산나!’ 함성을 지르면서 예수님을 뒤따라 들어오니깐 그렇게 당황한 차에 종교지도자들이 도대체 저 사람이 누구냐? 저 사람의 정체가 도대체 무엇이기에 말도 안 되는 이런 일을 성전에 와서 행하는 것이냐! 그래서 제제를 한다든지, 체포를 한다든지 그런 것에 앞서서 먼저 이 사람이 도대체 누구냐? 예수가 도대체 누구냐? 하는 정체를 먼저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아마도 그들은 여겼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예수님을 제제하지 못한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성전은 거룩한 곳인데 어떻게 그런 곳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이 있고, 돈 바꾸는 사람이 있고, 비둘기파는 사람들이 있고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어떻게 성전 안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 가능성을 우리가 생각해보겠습니다. 출애굽기 30:13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무릇 계수 중에 드는 자마다 성소의 세겔로 반 세겔을 낼지니 한 세겔은 이십 게라라 그 반 세겔을 여호와께 드릴지며

 

어디다 내라는 것이냐면 성소에 내라는 것입니다. 반 세겔이라고 하는 성전화폐로 성전 세를 내라! 율법에 하나님이 그렇게 명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성전 세를 내야만 하는 대상은 누구냐? 출애굽기 30:14입니다.

계수 중에 드는 모든 자 곧 스무 살 이상 된 자가 여호와께 드리되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스물 살 된 남자들! 스무 살 이상 된 남자들은 의무적으로 성전 세 반 세겔을 내야만 된다. 그러면 성전 세를 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무엇 때문에 하나님은 성전 세를 내라고 하느냐? 그 목적은 출애굽기 30:16입니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속전을 취하여 회막 봉사에 쓰라 이것이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기념이 되어서 너희의 생명을 대속하리라

 

그것을 취하여 회막 공사라는 것에 써라! 회막 공사라고 하는 것은 성전을 수리하고, 유지하고, 관리보수하고, 성전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경비대원들을 고용하고, 운영하는 것에 있어서 많은 예산이 들어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예산을 충당하기 위해서 성전 세를 내라고 이렇게 율법에 정한 것입니다. 이 성전 세는 물론 성전에 내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렇지만 꼭 그렇지만 않았습니다. 그것은 마태복음 17:24입니다.

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이르되 너의 선생은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여기서 반 세겔 받는 자들이라고 하는 것은 성전 세를 받는 사람들입니다. 그 가버나움에도 성전 세를 받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베드로를 보고서는 뭐라고 이야기를 하냐면, 예수님도 20세 이상 된 남자인데, 성인인데 왜? 성전 세를 안 내느냐! 성전 세를 내라! 그랬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전 세는 성전에 내는 것이 원칙이지만, 각지역마다 성전 세를 받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전 세를 내는 사람들의 편리를 위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갈릴리에 사는 사람이 성전 세 반 세겔을 내려고 예루살렘까지 갔다 오면, 갔다 오는 경비가 성전 세보다도 훨씬 더 많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말로 하면 뭐 보다 뭐가 더 큰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패단을 없애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것은 참 잘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유월절이나, 초막절 같은 그런 큰 절기에 나는 예루살렘에 가서 그 절기를 지킬 것이다. 이렇게 생각했던 사람들은 성전 세를 간직하고 있다가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가서 성전에다가 성전 세를 내었습니다. 그런데 그 유월절에는 이스라엘 땅에 사는 이스라엘 백성들만 참여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밖에 여러 나라에 흩어져서 살고 있는 디아소포라 유대인들도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많이 예루살렘으로 찾아왔습니다. 그들에게는 성전 세는 반드시 성전에서 쓰는 세겔이라는 돈으로만 내게 되어 있는데 그들에게는 그들은 자국에서 쓰던 화폐를 성전의 세겔로 바꾸어서 성전에 세를 내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편리를 위해서 환전소가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돈을 바꿔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 좋은 뜻에서 시작이 된 것이고, 외국에서 유월절을 지키러 오는 사람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것은 참 잘한 일이고, 좋은 일인데 그런데 왜? 예수님이 그런 사람들의 상을 다 뒤집어 엎고, 다 내쫓으셨느냐? 그 이유는 본래 이 환전소는 성전 밖에 있었습니다. 성전 밖에서 환전해주다가 어느 날부터 환전 수수료를 받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수수료가 조금씩 올라가다 보니깐 그것이 이윤이 남는 장사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돈 바꾸어주는 환전 업무가 굉장이 큰 이권 사업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장들이 그 이권 사업을 독점하려고 환전소를 성전 안에다가 설치하게 한 것입니다. 그렇게 변질이 된 것입니다.

비둘기를 파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둘기라고 하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물입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양을 잡아서 드릴 수도 없고, 돈이 없으니깐! 그래서 가장 싼 비둘기를 사서 하나님 앞에 제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에는 흠이 있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갈릴리에서 유월절 지키기 위해서 만약에 어떤 순례자들이 온다고 생각을 하면, 출발할 때부터 하나님께 드릴 제물! 비둘기를 너 놓는 새장에다가 비둘기를 넣어서 조심스럽게 운반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순례의 길이 굉장히 어렵기 때문에 가다보면 사람들도 다리를 다치기도하고, 상처도 나고 그러는데 그런데 새장 안에 있는 비둘기라고 그래서 온전할 수 있겠습니까! 오다 보면 뭐 비둘기가 죽기도 하고, 병들기도 하고, 어디에 치어서 상처가 생기기도 하면 그러면 이것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도중에 와서 그런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합니까? 갈릴리까지 다시 가서 비둘기를 가져오겠습니까! 그 와중에 어디 가서 비둘기를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런 한, 두 명이면 모르지만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찾아오는 순례객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이 생각 외로 많은 것입니다. 그것을 알고 성전 측에서 아예 비둘기를 파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아주 먼 곳에서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찾아오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감사한 일입니다. 그 비둘기를 다치지 않게 죽지 않도록 그렇게 조심스럽게 오는 불편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성전에서 비둘기를 사서 제물로 드리면 됩니다. 이것도 좋은 뜻에서 시작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시간이 지나가면서 그 성전에서 파는 비둘기는 시장에서 파는 비둘기보다 훨씬 비싸게 파는 것입니다. 그것만 문제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은 그 돈 몇 푼도 큰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집에서 조심스럽게 잘 관리를 해서 비둘기를 가지고 온 것입니다. 그랬더니 검시관이 검시하면서 이것저것으로 트집을 잡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성전에서 파는 그 비둘기를 사서 제물로 드리도록 하는 것입니다. 돈에 욕심이 있던 그들이 어떻게 보면 그렇게 가난한 사람들까지도 힘들게 하는 것입니다. 신앙이 이렇게 변질이 되는 것입니다. 신앙이 이렇게 변질 된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하는 것을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모습을 보았을 때 주님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을 뒤엎고, 의자를 뒤엎으시면서 예수님이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마태복음 21:13 말씀입니다.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여기서 기록된 바하는 말은 예수님께서 구약성경에 있는 이사야서의 말씀을 인용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구약성경 이사야서에 이렇게 기록 되어 있는데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사야서에서는 어떻게 기록 되어 있는지 한번 보겠습니다. 이사야 56:6~7 말씀입니다.

또 여호와와 연합하여 그를 섬기며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그의 종이 되며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마다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읽어보면 내용은 이런 것입니다. 먼 미래에는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집에 들어와서 함께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이고, 하나님을 예배하게 될 것이다. 하는 예언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에 하나님은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하나님의 집을 성전이라고 말씀하지 않고, 하나님의 집을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집을 성전이라고 말하지 않고,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씀하셨을까? 물론 성전이나, 기도하는 집이나 그 공통점은 같은 것입니다. 성전에서는 하나님께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이고, 기도의 집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섬기게 되는 그날이 오면, 그때는 성전이 파괴되고, 없어져 사람들이 모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때는 성전이 이미 없어져 버렸기 때문에 그래서 하나님은 지금 나의 집을 기도하는 집이라고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말씀을 지금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은 꼭 성전만이 아니라, 기도하는 집이 하나님의 집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분노하신 이유를 생각해보겠습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에서 돈에 욕심이 있어서 거기서 장사를 하고, 가난한 사람들까지도 힘들게 하는 그런 종교지도자들의 변질 된 신앙의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이 분노를 느끼시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분노를 느끼시는 이유는 그 돈을 바꾸어주는 그 환전소를 성전 어디에 설치는 했느냐는 것입니다. 성전을 보면 성전에 구역이 나누어져 있습니다. 제일 먼저 성전으로 들어가면 이방인의 뜰이라는 큰 마당이 나옵니다. 그곳은 이방인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다음 뜰은 이스라엘 여자들만 들어갈 수 있는 뜰이 있습니다. 그다음 뜰은 이스라엘 남자들만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다음은 제사장들만 들어가는 영역이 있습니다. 이렇게 성전 안에는 영역이 다 구분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제사장들과 종교지도자들이 환전소를 거룩한 성전 안에다가 설치하려고 보니깐 그들도 양심이 있다 보니깐 꺼리는 부분이 있는 것입니다. 성전 어디에 설치하겠습니까? 보니깐 제일 좋은 곳이 이방인의 뜰입니다. 그들은 이방인을 개처럼 여겼기 때문에 이방인의 뜰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다가 환전소를 만들고, 비둘기파는 장소도 거기다가 한 것입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의 생각에는 변질 된 신앙을 가진 너희들보다 오히려 이방인이 더 낫다. 훗날 너희들이 지금 앉자 있는 그 자리! 너희들이 차지하고 있는 그 자리를 이방인들이 대신하게 될 것이다. 그런 예수님의 그 아픔! 분노! 그런 마음을 담고서 그들에게 그렇게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분노가 거기서 끝나지 않고 그것이 무화과나무에게 까지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1:18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예수님도 배가 고프실 때가 많으셨습니다. 때로는 예수님을 좋아해서 예수님을 초대해서 식사 대접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예수님이 배불리 드셨지만, 오늘 본문에서 보는 것처럼 예수님이 아침을 드시지를 못해서 배고 고프신 때도 여러 번 있는 것입니다. ? 아침을 드시지 못하고 나오신 것일까? 마가복음에 보면 여리고를 출발해서 예루살렘에 도착하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무렵이 오후, 저녁 시간이 다 되어가는 무렵이었습니다. 그래서 성전에 들어가시지 못하시고 성전을 둘러보시고, 베다니로 나가십니다. 예루살렘에서 베다니까지는 한 2~3km 떨어진 곳입니다. ? 저렇게까지 멀리 나가시느냐? 유월절에는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이스라엘 전역에서 외국에서 많은 순례객들이 오기 때문에 예루살렘 성내에서는 방을 구할 수가 없습니다. 이미 돈이 많은 사람들이 다예약을 해놓았기 때문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있을 곳이 없는 것입니다. 거기서 2~3km 떨어진 벳박이나 베다니 같이 멀리 떨어진 동네로 가서 숙박하고, 아침에 예루살렘으로 걸어오시는 것입니다. 베다니에는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예수님의 친구인 나사로, 마르다, 마리아가 살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것은 또 이해가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에서 하룻밤을 주무시고, 아침 일찍 나오셨다면 당연히 아침을 해서 예수님에게 아침 식사를 하게 하고, 예수님이 나오시도록 해야지, 어떻게 식사도 해드리지 않고 예수님이 그냥 나오게 했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것을 오늘 우리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이해가 안 됩니다. 한번 생각해보세요? 예수님의 제자가 12명이고, 예수님까지 하면 13명입니다. 13명의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것은 지금도 어렵습니다. 지금처럼 가스 불도 있고, 냉장고 열면 음식을 많이 있는 것을 가지고 13명의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것도 어렵겠지만, 그 당시에는 불을 짚어야 하죠! 반죽해야 하죠! 시간이 보통 많이 걸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13명이 먹을 만한 식사를 준비한다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것이 아닙니다. 아마 제 생각에 마르다와 마리아는 힘들지만 그렇게 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것이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더는 신세를 지지 않으시려고 식사를 거르시고, 나오셨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배가 고프셨으면,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보고는 무화과라도 따먹을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요기라도 해야 되겠다. 그래서 무화과나무 앞으로 다가선 것입니다. 가서 보니깐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너는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들이 열매를 따먹지 못할 것이다. 일종의 저주를 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그 무화과나무가 말라서 죽게 되었습니다. 이런 말씀을 읽으면, 이해가 잘 안 됩니다. 왜냐면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님하고는 너무나 다릅니다. 아니 무화과나무에 가서 열매가 없으면, ! 없구나! 그러면 그만 일 것을 굳이 열매 없다는 이유로 말도 못 하는 나무를 저주해서 꼭 죽여야 하겠습니까! 예수님은 그럴 분이 아닌데 우리는 그런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무화과나무에 대한 이해가 조금 부족해서 그런 것입니다. 무화과라는 나무는 무화과 잎이 나오기 전에 먼저 열매부터 나옵니다. 그런데 처음 나온 열매는 잎이 나오기 전에 나왔기 때문에 잘 자라나지 못합니다. 그리고 2달 정도 지나면 3월에 따뜻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그때 무화과나무 잎사귀가 나오면서 또 열매가 나옵니다. 그때 나오는 열매는 그 잎사귀가 나왔기 때문에 그 열매도 충실하게 성장을 해서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먹을 만한 무화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처음 나온 무화과는 잘 자라지 못하기 때문에 3월에 따뜻한 바람이 불고, 무화과나무 잎사귀가 나오기 시작하면 그대로 익어버립니다. 그 크기가 어른 남자 엄지손가락만 한 것이니깐 얼마나 작은 것이겠습니까! 그러니 예수님은 무엇을 기대하고 가셨냐면 그런 것이라도 달려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간 것입니다. 어떤 무화과나무도 다 첫 번째 열매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상품 가치가 없으니깐 주로 예수님처럼 배고픈 사람들이 따먹고, 나그네들이 가다가 따먹고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가보니깐 그런 것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런 것만 없는 것이 아니라 무화과 잎이 나왔다면 두 번째 무화과도 열렸어야 하는데 그 두 번째 무화과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내린 결론은 무엇이냐면 이 무화과나무는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없다? 맺을 수 없는 나무입니다. 무화과를 심는 것은 열매를 기대하고 심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화과가 열매를 맺지 못하면 그것은 있으나 마나 한 것입니다. 존재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농부들도 그런 무화과나무는 뽑아 버립니다. 다른 무화과나무가 잘 결실하도록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예수님이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해서 죽게 했다. 그렇게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농부들도 뽑아 버리는 나무니깐!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그 무화과나무를 보는 순간 아마도 변질 된 예루살렘 성전! 변질 된 종교지도자들의 모습과 오버랩이 된 것 같습니다. 어쩌면 열매 없고, 잎만 무성한 이 무화과나무하고 그렇게 비슷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예루살렘 성전! 겉은 얼마나 화려하고, 멋있습니까! 그런데 그 속은 완전히 다릅니다. 종교지도자들의 외형은 얼마나 거룩해 보입니까!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이 꼭 열매는 없고, 잎만 무성한 그래서 사람들이 볼 때 기대감만 가지게 하는 이 무화과나무와 너무 흡사하다는 생각을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변질 된 신앙을 가진 너희들의 미래는 앞으로 이 무화과나무처럼 그렇게 될 것이다. 이런 예언의 메시지를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메시지를 하실 때는 이렇게 말로만 하실 때도 있지만, 나무를 이렇게 함으로 인해서, 어떤 기적을 통해서도 메시지를 전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유념해야 할 것은 예수님의 이런 행위에 대한 제자들이 보인 반응입니다. 마태복음 21:20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겨 이르되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

 

제자들이 이렇게 질문을 합니다. 어떻게 무화과나무가 말라 죽었습니까? 이렇게 질문을 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저렇게 질문하는 모습을 보면서 여러분들은 이상하다는 생각이 안 드십니까? 첫째 무화과나무가 죽은 것을 보고 제자들이 이상하게 여겼다는 것입니다. 뭐가 그렇게 이상합니까? 그동안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보여준 기적이 한, 두 가지입니까! 장님이 눈뜬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까! 문등병자가 낳은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까! 예수님이 바다 위를 걸어오신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까! 예수님께서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오천 명을 먹으신 일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까! 아니 그런 기적도 수없이 경험 했는데 나무 한 그루 말라 죽은 것을 가지고 그것을 무엇을 이상하게 여겨가지고 예수님에게 어떻게 이 나무가 말라서 죽었습니까? 그런 질문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까! 오히려 제자들이 주님에게 질문을 하려고 하면, 주님은 풍랑 이는 바다도 말씀 한마디로 잠잠하게 하듯이 모든 자연이 다 주님의 발아래 있어서 주님의 말씀에 다 순종하는 것을 저희들은 압니다. 이 무화과나무도 주님께서 말씀하시니깐 그대로 순종을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 ? 그렇게 하셨습니까? 이 기적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이렇게 물어봤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깐 그 제자들이 무화과나무 하나 죽은 것이 이상하게 여겨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하고 질문하는 그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의 심정과 마음은 어떻겠을까? 우리가 예수님이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한심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그 일로 책망하지 않습니다. 제자들을 그리고 그것을 기도로 연결시켜서 설명을 해줍니다. 참 놀라우신 예수님입니다. 마태복음 21:21~22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마도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다. 하는 것을 염두해 두고 그 기도하는 집에서 너희들이 기도하게 될 때 너희가 생각하지 못한 많은 기적들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로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기도에 저런 능력이 있는 것은 기도 자체에 어떤 힘과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이루어주시는 분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기도에 그런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면 예루살렘 성전에는 없어야 할 것이 있어서 문제라면, 무화과나무는 있어야 할 것이 없었던 것이 문제입니다. 항상 문제는 그 문제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때에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든, 우리 자신이든 없어야 할 것은 없어야 하고 있어야 할 것은 있어야 하는데, 항상 문제는 있어야 할 것은 없고, 없어야 할 것은 있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있어야 할 것이 있으면, 없어야 될 것은 없어질 경우가 많은데 반대로 없어야 할 것이 자꾸 많아지면 있어야 될 것이 점점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없어져야 될 것과 있어야 될 것은 반비례 관계입니다. 그러면 교회에 있어야 할 것은 무엇이고, 없어야 할 것은 무엇이냐? 교회안에 없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시기, 질투, 미움, 비난, 비판 이런 것들은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기도입니다!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것이 기도인데 아버지의 집에 기도가 없다는 것은 마치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제일 먼저 회복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 기도입니다! 기도라는 것은 하나님과 만남이기 때문에 기도 없이 무슨 일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만남 없이 무슨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 없이 하는 일은 그것이 아무리 선교든, 봉사든, 하나님의 일이든, 그것은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일이 됩니다. 그러나 가정의 일이든, 직장의 일이라도 늘 우리가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기도하면서 그 일을 하면 그 일이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고 할지라도 다 하나님과 상관이 있는 일이 되고, 그것이 다 하나님의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에게 필요한 것이 기도입니다.

기도 없는 신앙생활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신앙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너희가 기도할 때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다 받으리라! 아멘! 다 받으리라! 믿고 구하는 것마다 다 받게 되는 기도 응답의 경험이 우리 교회 적으로 끊이지 아니하고, 우리들의 신앙생활 속에서도 끊이지 않고 기도의 응답들이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다. 주님의 말씀처럼 아버지의 집에 기도가 있게 하시고, 기도하는 성도들로 가득 찰 수 있게 하여주시옵소서.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그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게 하시고, 그렇게 기도하는 성도들마다 모두 응답받는 체험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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